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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리터치 메시지_너희가 소명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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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손기철 장로

너희가 소명을 아는가?

 

삶이 왜 이렇게 역경과 고난의 연속인가?

역사 이래로 나와 같은 자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70억 인구 중에 나와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은 나 한사람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을 때 우리 각자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클론 로봇을 만들 듯이 붕어빵을 찍듯이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다.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고난, 역경, 질병 등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바른 태도는 문제가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도록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 모습대로 살지 않을 때 우리는 당하거나 겪지 않아야 할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된다. 삶의 모든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소명대로 사는 것이다. 소명대로 사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흥분되는 모험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을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보아왔다. 하나님께서 모든 면을 풍성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신 소명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신다.

 

소명이 아닌 것은?

먼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감격하게 되고, 그와 비례하여 자신의 세속적인 직업과 일상의 일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매일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하는 일이 속된 것이고 매일 함께 하는 주위의 사람들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으로 보이고 그들이 싫어진다. 한편, 반대로 매일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말씀을 볼 때 자신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성도들과의 교제는 아름답고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이제는 세상적인 일이 덧없어 보이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일상의 삶이 덧없어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시기를 원하실까 에 대해서 고민하며 기도하기 시작한다. 교회, 신앙, 기독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세상 사람들과 다툼도 없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으며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체험하게 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일자리를 그만두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도 없었고, 또 그 직장을 그만 둔다면 당장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부르심에 의해서 이러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선교사로 자원하거나 목회자로 나서는 분도 있다).

 

소명이란 무엇인가?

소명, 즉 부르심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처한 직업이나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독교와 관련된 직업을 찾으려 하기도 한다. 흔히들 소명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자신을 불러 앞으로 너는 이런 일을 해라”라고 말씀하시는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좋은 소식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복음은 우리가 단순히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내 일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불러 주시고 행하도록 한 일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소명이다. 우리에게는 거듭난 영적 존재로써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깊은 갈망이 있다. 그것이 바로 소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소명은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세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예를 들어, 직장생활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교회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세상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대신에 교회 성도들과만 교제하는 것이나), 세상을 통치하는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마귀의 자녀로 종노릇하는 삶에서 벗어나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적으로 살던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내가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의 육신에 종노릇하던 “내가”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가 이 것 말고 저것을 택하는 삶의 이원론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 존재가 새롭게 태어나는 방향성의 변화이다. 방향성이란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교회 안에 있든 직장에 있든), 그 내가(옛사람이) 과거와 동일하게 마귀의 통치함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내가(새사람이)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교회(헬라어로 ‘에클레시아’, ‘에크’는 ‘…으로부터’, ‘레시아’는 ‘불러내다’라는 뜻)의 참의미이다. 이것은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며 세상적인 삶을 살던 나를 불러내어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육적으로 세상신에 붙들려 살던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불러내심으로 이제 동일한 위치, 동일한 처지, 동일한 상황 하에서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영적인 존재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흑암의 통치로부터 불러낸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하셨지, 그 일에서 벗어나거나 그 사람들과 분리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7:24

 

이렇게 첫 번째 소명을 받은 자들이 이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의도하신 그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소명의 두 번째 단계이다. 소명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나를 통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나에게 의도하신(목적하신) 그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옛사람(옛 본성에 기초하여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묶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내가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내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나타내는 것은 일이고 직업이고 다양한 자원 활동일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일과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히브리어, 바라)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창조(히브리어, 아사)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마침내 하나님나라가 도래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도록 부르고 계신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창조사역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피조세계에서 이전에 없었던 일을 행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켜 나가는 모두가 창조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도록 일을 주셨지만, 우리가 타락함으로 일은 노동이고 고통이며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왜 소명을 찾을 수 없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일을 우리를 통해서 행하도록 역사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우리 각자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원래 나를 창조하셨을 때 의도하신 그대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본래의 우리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우리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 부모, 환경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불러내셔서 우리가 우리 되도록 하시고 본래 주신 그 일을 행하도록 하신다. 우리가 그분께 자신을 내어드린 만큼 우리는 더 진정한 자신이 되어 간다.

 

소명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태어나서 본성적 결핍을 채우고자 욕구에 기초한 신념체계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졌던 삶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살아 왔던 방식과 행동 그리고 그것에 따른 결과들을 내려놓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부가적으로 주시는 소명을 얻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소명을 주시고 그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는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자리이다”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즐거움이 육신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 삶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만든 수많은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신념체계는 세상신, 유전적 기질, 부모와의 관계, 환경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신념체계 안에는 올바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쓴뿌리 그리고 왜곡된 믿음과 감정 등이 존재한다. 치유 받지 못한 외상은 우리의 주위를 흐트러뜨리고 우리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우리가 소명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해결되지 않은 외상은 우리의 소명에 이르는데 심각한 위협이 된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제거할수록 욕구에 기초한 소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기초한 소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